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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따라잡기/기타

저널리즘 전문 대학원의 당위와 가능성

(이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에서 가져온 것 입니다)




저널리즘 전문 대학원의 당위와 가능성


급변하는 시대 언론인 재교육

전문 대학원 설립 서둘러야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국내에는 아직 제대로 된 저널리즘 전문 대학원이 없다. 언론홍보 대학원이 있지만 저널리즘에 특화된 교육은 아니며 교육 대상자도 언론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직에 있는 대다수의 언론인은 이런 과정을 요구한다. 콘텐츠 유료화를 통해 언론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도 전문성 강화를 통한 콘텐츠 고품격화는 불가피하다.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지식사회를 맞아 국민의 공적지식 수준을 좌우하는 언론의 전문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명분이 없거나, 필요가없거나, 재정 및 교육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공감대 부족, 청사진 불투명한 저널리즘 대학원

  무엇이 문제일까? 그 속사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얘기가 있다. 너무 어릴 때 읽은 얘기라 전체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한 마을이 지독한 가뭄에 시달렸다. 논과 밭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모두 굶어죽기 직전으로 내몰렸다. 견디다 못한 동네 사람들은 비를 내리는 신께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너무나 간절한 기도였기에 신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바쁜 일정을 잠시 접어두고 비를 원했던 마을에 서둘러 내려왔다.


  그러나 동네 뒷산 정상에 올라가서 비를 내리려고 할 때마다 뜻밖의 일이 생겼다. 첫날에는 마침 결혼식을 하기로 했던 신혼부부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하루 정도 늦어도 좋으니까 제발 결혼식이라도 마치고 난 다음에 비를 내려달라는 부탁이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튿날에는 소금 행상을 하는 어머니가 부랴부랴 달려왔다. 오늘 비가 내리면 그간 투자했던 게 모두 날아가서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는다는 말에 또 하루를 보냈다. 셋째 날도, 넷째 날도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사연이 이어졌다. 일주일 동안 연기했던 신은 마침내 비를 포기하고 떠나고 말았다.


  공동체의 이익이란 구성원 각자의 이해관계를 단순히 합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국내에서 저널리즘 대학원이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반대하는 입장도 찬성하는 쪽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고, 청사진도 뚜렷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점도 있다. 국내 언론이 걸어왔던 역사적 발자취는 물론 과잉우려를 낳고 있는 신문 시장,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 언론 교육에 대한 회의감 등도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혁명, 광고주의 영향력 증대, 정치권의 언론 독립성 훼손, 언론의 정파성 등 국내 언론을 위협하는 더 중요한 현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위성, 현실 및 실현 가능성 등을 뜯어보면 앞서 소개한 얘기와 많이 닮았다.



언론인 재교육 갈증 크지만 제대로 된 기관 없어

  언론의 본질적 역할은 누구나 언론인이 될 수 있고 공짜 뉴스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서도 크게 변질되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하는 언론사는 급증했지만 개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여전히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특정한 목적에서 생산되는 정보를 비롯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언론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정보 풍요의 역설이다.


  뉴욕카네기재단의 바탄 그레고리안(Vartan Gregorian)이 “탁월한 훈련을 받고, 지적으로 치열하면서, 자신이 보도하는 주제를 충분히 알고, 그들의 윤리 적 기준에 엄격하면서 또한 진실을 추구하는 용기를 가진 저널리스트의 도움은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한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그레고리안은 2005년 ‘카네기-나이트 이니셔티브’를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프로젝트는 저널리즘 교육의 혁신을 위해 공익재단, 대학 및 언론사가 공동으로 추진했다. 이를 통해 저널리즘 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양질의 탐사보도가 늘었으며, 보다 우수한 학생들이 저널리즘 분야로 진출하는 등의 긍정적효과가 얻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 사회에서 이러한 당위는 다양한 형태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미국의 컬럼비아 저널리즘 대학원은 2005년부터 기존의 예비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외에 현직 언론인 및 관련 분야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석사(MA)과정을 신설했다. 대학원 수준의 전문 교육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버클리대, 뉴욕대, 뉴욕시립대 및 서든캘리포니아대 등에서도 잇따라 대학원 과정을 확대하거나 신설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전문지식을 교육하기 위해서다. 영국도 대학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뉴스, 잡지, 스포츠, 경제 및 금융, 온라인, 비디오, 라디오 및 TV 저널리즘 분야의 국가자격증을 도입했다.


  저널리즘 교육에 대한 경시 풍조가 강했던 독일 역시 경제, 스포츠, 과학 등에 특화된 전문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홀츠브링크 경제저널리즘스쿨과 루어 기자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언론인 교육에 대한 공동체 차원의 지원 필요성, 언론 현장의 보다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갈증 및 전통적인 언론인 재교육 모델의 붕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언론인 연수 및 재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현업 언론인의 찬성 비율은 줄곧 90%가 넘는다. 재교육을 희망하는 분야도 ‘분야별 전문 지식, 뉴미디어 산업과 미디어 발전 방향, 멀티미디어 지식 및 활용법과 탐사보도’ 등으로 국제 사회의 일반적 흐름과 거의 같다.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정리해고와 계약직 확대 등에 대비해 몸값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에 몰리는 현상도 동일하다. 디지털의 확산에 따라 취재 방식은 물론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급변하면서 전통적인 재교육 방식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광고라는 안정적 수익원을 바탕으로 언론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언론사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이 공동체 차원에서 언론인 교육 혁신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유럽은 정부가 앞장서 언론인 재교육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위에서나, 필요에서나, 위기의 심각성에서 훨씬 정도가 심한 국내에서 이러한 노력은 안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을 비롯해 삼성언론재단, 상남언론재단, 방일영문화재단과 유민문화재단 등 저널리즘관련 공익재단은 국내에도 적지 않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저널리즘을 교육하는 대학도 많고 세명대학교와 이화여대 등은 저널리즘 스쿨도 개설했다.


문제는 이 중에서 당위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저널리즘 전문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없다는 데 있다. 국내대학원은 저널리즘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가르치는 곳이다. 과학저널리즘 전문과정이 있는 KAIST를 제외하고 국제정치, 경제, 금융, 의학과 과학 등에 특화된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원도 없다.

언론진흥재단의 경우 수습기자 교육 및 디플로마 과정 등이 있지만 대부분 2~3주 정도의 단기 과정으로 지식 기반의 디지털 저널리즘 역량을 기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언론진흥재단 같은 공익재단이 설립 주도할 수도

  결국 비를 내리지 못하고 돌아서게 했던 이유가 엉터리가 아니었듯 언론 교육과 관련한 논의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한 데도 납득할 만한 사연이 있다. 기존의 언론 관련 대학 및 대학원 프로그램과 중복된다는 지적, 언론인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 미국과 달리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진이 부족하다는 평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입학생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 등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교육법으로 인해 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이 복잡할 뿐더러 유럽과 같은 직능 단체도 없고 미국과 같은 공익재단도 없는 상황에서 운영 주체가 없다는 점 역시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얼마든지 다르게 풀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당위에 대한 공감대와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이다. 저널리즘에 특화된 전문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원을 신설하는 문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KDI정책대학원과 원자력전문대학원 등 국내에만 이미 80여 개의 전문 대학원이 있다. 설립 요건도 별로 까다롭지 않다. 가령, 대학의 경우 최소 1,000명 규모의 시설을 확보해야 인가를 받을 수 있으나 대학원은 5분의 1 수준인 200명 규모만 있으면 된다. 교원도 일반 대학은 최소한 학생 500명 기준의 교수를 확보해야 하지만 대학원 대학은 40명 기준만 충족하면 된다. 또 수익용 기본재산의 최소 기준 역시 일반 대학은 100억 원이지만 대학원 대학은 40억 원이 있으면 요건을 충족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같은 공익재단이 설립할 경우 명분도 있고 기존의 조직을 활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정부 산하 기관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신문협회와 방송협회, 기자협회, 편집인협회 등과 함께 일종의 집단관리 체제인 ‘저널리즘 교육위원회’를 구성하면 된다. 또한 언론인 재교육에 집중할 경우 기존의 저널리즘 스쿨을 운영하는 대학은 물론 언론홍보대학원과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도 거의 없다.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현직 언론인의 입장을 고려할 때 1년은 전일제로 수업을 듣고 나머지 1년 동안은 직장에 다니면서 논문을 쓰도록 하는 탄력적인 운영도 가능하다. 이 경우 고등교육법 제31조에서 규정하는 2년 이상의 석사과정이라는 조항을 위반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저널리즘 대학원처럼 소수의 전임교수와 다수의 현직 언론인 출신 겸임교수를 활용할 경우 언론인 전문성 재활용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계, 정부 및 민간재단 등에서 공동으로 조성한 프레스펀드등을 활용해 입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면 우수한 인재 확보는 물론 저널리즘 품격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그 밖에, 뉴욕시립대에서 하는 것처럼 장학금으로 다닐 경우 졸업 후 상대적으로 영세한 언론사에서 일정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일하게 함으로써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도 막을 수 있다. 저널리즘의 품격은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한계를 종합적으로 혁신할 때 높아진다. 정치권은 물론 소유주와 광고주의 영향력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2014년 국내 언론의 현실을 감안할 때 언론인 전문화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복원과 이를 통한 국가 공동체의 번영을 고려할 때 언론인 교육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당장 인체에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신선하지 못한 물과 오염된 공기가 반드시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저널리즘의 타락은 공동체의 미래를 필연적으로 파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