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지만
이글은 경남신문에서 가져온 것 입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지만…- 정오복(문화체육부장)
#.일주일 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남쪽 타르고비스테에서 전송된 외신 사진 한 장이 눈길을 잡았다. 살인사건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죽은 사람의 쓰러진 형태를 윤곽만 페인팅한 바로 옆에서 무심하게 노는 아이들, 기념촬영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곳은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당서열 2위였던 그의 아내 엘레나가 23년 전 처형됐던 현장이다. 루마니아 당국은 공산주의 정권 시절 군사령부 경기병 막사였던 이곳을 박물관으로 꾸며 지난 3일 개관했다.
차우셰스쿠는 24년간 철권통치를 하면서 7만 명이나 되는 반대파를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독재는 동유럽 공산주의가 몰락하던 1989년, 군사재판에서 학살죄를 선고받고 그해 12월 25일 성탄절 오후 처형됐다.
#.일반적으로 총살형 때는 사형 집행인들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소총의 절반만 실탄을 장전하고, 나머지는 공포탄을 장전한다. 따라서 차우셰스쿠 사형 집행을 담당했던 군 부대도 소총수 10명을 차출, 실탄 1발씩 장전한 소총 5정과 공포탄 1발씩 장전한 소총 5정을 무작위로 나눠주려 했다.
그런데 당시 소총수를 자원한 병사가 30여 명에 달했고, 소총수들은 각자 30발씩 실탄을 장전해 왔다고 한다. 겨우 설득해 자원자를 8명으로 줄였고, 이들 모두 처형자가 되길 원했지만 3명만 차출해 집행했다고 한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무려 90발의 총탄을 맞고 비참하게 숨졌다.
이 같은 비극의 현장이 23년 만에 관광상품으로 변모, 절대권력의 허망함을 무언으로 고발하고 있다.
#.‘한때 권력’의 잔존물은 경남에도 있다. 합천군 율곡면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가 그것이다. 생가는 독재권력답게 전 씨가 대통령으로 있던 1983년 복원했다.
10년 전쯤, 당시 생가 복원업무를 담당했던 합천군 전 공무원(지방직 서기관으로 퇴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생가 복원 추진상황을 상경해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고처가 청와대나 내무부 또는 총무처가 아닌 새마을협회 중앙본부였다. 그때 권력의 실세 중 한 명이 대통령 친동생인 전경환 새마을협회 사무총장이고 보니 정·재·관계 가릴 것 없이 그의 사무실 앞엔 365일 장사진을 쳤다. 그러나 생가 복원 담당공무원은 몇 시간씩 기다리는 대기자들을 제치고 언제나 즉시 접견이 가능했다. 더욱이 업무보고 후에는 한 달 급여에 버금가는 격려금까지 하사(?)받고 보니 그는 무용담처럼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경남도가 초가 한 동인 생가를 복원하는 데 당시 61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애초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 했다는데, 민주화 이후 본래 목적성을 잃고 20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다. 그런데도 2008~2012년 시설유지 관리비로 2억3000만 원가량 들었고, 앞으로도 매년 1700만 원씩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한단다.
#.“29만 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2205억 원 중 미납추징금 1672억 원을 내지 않고 16년 동안 버티던 전 씨. 처남이 구속되고, 둘째 아들과 며느리까지 줄줄이 소환되는 볼썽사나운 꼴을 당하고서야 자진 납부 계획을 어제 오후 밝혔다.
그러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명제에 견줘 볼 수 있듯 상당수 국민들의 정서는 미납 추징금 납부만으로는 용서가 안 된다는 데 귀결되고 있다. 일사부재리 원칙을 깨는 초법적인 조치를 통해서라도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자는 게 많은 국민들의 바람이다.
비록 현실에선 원하는 대로 되진 않더라도 ‘지연된 정의’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6년 동안의 이자는 물론, 다른 용도로 활용함으로써 발생한 이익도 추징하길 바라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법적인 정황도 드러난만큼 결코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준엄한 여론이다.
정오복(문화체육부장)
출처- 경남신문: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85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