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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영리 언론사의 최근 동향 및 전망

아담한남자 2013. 7. 1. 11:28

뉴스 비즈니스의 대안 모델 혹은 일시적 유행?

미국 비영리 언론사의 최근 동향 및 전망

 

상업모델의 모순과 망각에 대한 투쟁

 

박인환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이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서른을 채 못 채우고 세상과 작별했다. 그의 대표작‘얼굴’은 인기가수 박인희의 시낭송 음반을 통해 많은 청춘의 가슴을 울렸다. 1974년 암울했던 유신 시대의 이야기다.“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기를 꽂고 산들 무엇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듣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단순한 연애시 정도로만 알았던 이 시의 참맛은 세상을 더 알면 알수록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면에서 정치인과 연예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대중의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과 잊혀짐이다. 망각에 대한 투쟁은 언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근 네이버의 뉴스스탠드 실험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중은 이제 뉴스의 출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극소수 언론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미‘잊혀진 얼굴’이다. 많은 신문사는 이제“모르고 살아도 되는 남”이 된지 오래다. 국정원이 국정원답지 못하고 검찰이 검찰답지 못해 외면 받는 것처럼 언론은 존재의 이유(raison d'etre)를 상실하고 있다. 객관적인 전달자가 아닌 주관적인 간섭자, 약자를 억압하고 강자에 영합하는, 정당보다 더 정치적인 언론에서 언론다운 모습은 찾기 어렵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언론이 거대 기업화하고 정치세력화 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자연스러웠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모두 언론의 감시를 받는다. 국회의원도, 대기업 회장도, 연예인도, 의사도, 대학교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통신망, 도로망, 의료시설, 교육시설 등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과 달리 언론 기업과 언론인은 책임에서 자유롭다. 독과점을 형성하는 뉴스 시장에서 소비자 운동은 무기력하다. 정부나 정치권의 간섭은 곧바로 언론 자유에 대한 도전으로 비난받는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명목으로 언론은 온갖 뉴스를 내보낸다. 광고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비용은 많이 드는 탐사보도, 국제보도와 공공정책 뉴스는 당연히 괄시를 받는다. 1900년대 이후 약 100년 이상 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끌어 왔던 광고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직면한 모순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는 비영리 언론사는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언론이 잊히고 남모를 얼굴이 될 때 민주주의는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결과이기도 하다.

 

비영리 언론사의 진화

 

국제사회에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화주의 및 절대왕정 등 다양한 유형의 정치 시스템이 존재한다. 언론의 역할, 소유 및 운영구조, 정부와 관계 또한 결코 단일하지 않다. 광고수익과 구독료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상업모델이 지배적인 유형으로 자리를 잡은 지난 100년 동안에도 많은 언론모델이 있었다. 대부분 국가에서 방송은 여전히 국가운영 또는 공적운영의 형태를 띤다. 민영과 공영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정당과 언론의 관계 및 뉴스에 대한 규범적 가치 등을 고려할 때 미국모델, 유럽모델, 발전모델 등의 구분도 가능하다. 종이신문의 경우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부, 정치권, 종교단체 등의 통제를 받는 경우는 여전하다. 언론사의 주식이 공개된 경우도 있고 여전히 가족소유인 곳도 있다. 게다가 비영리 언론사는 일찍부터 존재했으며 완전히 새로운 모델도 아니다.

위키피디아(wikipedia.org) 자료에 따르면 비영리 언론사의 기원은 종이신문의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6년 뉴욕에 있던 5개의 신문사는 미국과 멕시코 전쟁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기 위해 하나로 합쳤다. 당시 실험을 계기로 AP(Associated Press)가 탄생했는데 미국 신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세계 최대 통신사의 하나인 AP는 지금도 비영리 언론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영리 잡지로는 1973년 영국에서 발간된 뉴 인터내셔널(New International)이 있다. 미국 최초의 비영리 언론사는 1974년과 1976년 각각 출범한 시카고 리포터(The Chicago Reporter)와 시티 리미트 매거진(City Limit Magazine)이다. 1967년 공영방송법을 통해 출범한 내셔날 퍼브릭 라디오(NPR)와 1977년의 탐사보도센터(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 CIR)도 잘 알려진 비영리 매체다. 언론사가 안정적인 수익을 누리는 동안 비영리 매체는 주로 대학신문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1980년 미국 러커스대(Rutgers University) 부설 <데일리 타검>(Daily Targum)은 대학신문 최초로 재정독립을 선언했다. 자체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운영하고, 수익이 남을 경우 전액 신문사로 환원하는 모델이었다. 광고를 비롯해 출판물, 스포츠 행사, 콘서트 등 다양한 유형의 수익원도 발굴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대학생 인턴을 객원기자로 활용하고, 전국뉴스와 국제뉴스는 AP와 계약을 통해 공급받았다. 대학공동체가 속한 지역의 현안을 주로 다루었고 배달비와 인쇄비를 최소화 했다. 주로 편집권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이 모델은 1990년대 이래 꾸준히 확산되었고 현재 110개 이상의 대학신문이 비영리 재정자립형 모델로 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컬롬비아대학의 <Columbia Daily Spectator>, 하버드대의 <The Harvard Crimson>, 노스캐롤리아대의 <Daily Tar Heel>과 조지아대학의 <Red & Black> 등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비영리 언론사 모델은 그 규모, 유형 및 영향력 등에서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지만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도 의미 있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메디아파르(Mediapart). 2008년 프랑스에서 출범한 온라인 전용 비영리 언론사다. 편집국장은 리베라시옹과 르몽드 기자 출신 프랑수아 보넷(Francois Bonnet)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전문적 언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총 직원 45명 중 2/3 이상이 편집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주요 수입원은 구독료다. 약 75,000명에 달하는 정기구독자는 연간 90유로에 달하는 구독료를 지불한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으로부터 약 740억 원에 달하는 정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폭로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영국의‘탐사저널리즘국’(The Bureau of Investigative Journalism)도 주목할 만하다. 공공이익을 목적으로 2008년 설립된 이후 이 매체는 2010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런던 시립대(CIty University) 부설 언론사다. 세계보건기구(WHO) 과학자의 도덕적 해이, 미국 정부의 무인공격기 민간인 공격, 영국 교도소의 수감자의 피살 등 굵직굵직한 탐사보도가 이 매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업모델의 막강한 경쟁자로 주목받는 곳은 단연 미국이다.

2013년 미국 비영리 언론사의 현 주소

 

미국 국세청 기준으로 501(c)(3)에 해당하는 비영리 언론사는 공익서비스 중에서도 교육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조직을 가리킨다. 일부 주(州)의 경우 연방세금 면제라는 혜택을 주기도 하는데 이들 회사에 기부할 경우 세금 면제 혜택을 받는다. 경영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주주에게 배당으로 줄 수 없고 회사로 다시 환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당연히 외부 감사를 둬야 하고 매년 국세청으로부터 공익서비스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심사를 받는다. 현재 알려진 미국 내 비영리 언론사는 대부분 2000년대 중반 이후 설립되었다.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급속하게 등장하고 있는 이들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퓨센터(Pew Research Center)의 <탁월한 저널리즘을 위한 프로젝트>가 발간하는 보고서를 통해 그 현황은 잘 파악되고 있다.

2013년 6월 10일. 퓨센터는 미국 비영리 언론사의 현황에 대한 온라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비영리 저널리즘: 미국 뉴스 생태계의 급성장세 속 미성숙 분야”(Nonprofit Journalism: A Growing but Fragile Part of U.S. News System)였다. 비영리 모델에 해당하는 총 700개 정도의 언론사 중 보고서 목적에 맞는 172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였다. 주요 설문 문항으로는 해당 언론사의 주요 영역, 후원기관, 설립연도, 예산, 취재인력 규모, 애로사항, 향후 전망 등이 포함되었다. 먼저 2012년 12월 기준 미국의 대표적 비영리 언론사를 분야별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1>과 같다.





위의 <표1>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비영리 언론사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탐사보도가 아닌 일반주제다. 프로퍼브리카, 캘리포니아와치, 공공청렴성센터와 같이 널리 알려진 매체는 드물고,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고,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정책과 국제뉴스에 특화된 매체의 비중은 그 다음으로 높았다. 그 밖에, 특정 주제를 다루는 매체도 많았는데 환경(4%), 예술·문화(4%), 건강(3%), 사회정의(3%) 및 교육(2%) 등으로 구분된다. 대부분 2008년 이후에 설립되었으며 전체 172개 개 중 2008년 이전에 설립된 비중은 29%에 불과했다. 2008년과 2009년에 설립된 매체는 전체의 46%에 달했고 2010년 이후에는 다소 주춤한 25%대에 머물고 있다.

고용 형태는 정규직, 시간제 및 자원봉사자로 구분되어 있으며 직원 규모가 5명 이하인 비중이 가장 높았다. 6명에서 10명이 근무하는 매체는 41개, 11명에서 25명은 22개, 25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곳은 21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와치의 경우 직원은 70명 수준을 넘어섰고, 프로퍼브리카 역시 현재 35명 이상이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보도범위는 상당히 다양하다. 뉴욕주, 펜실베니아주, 메인주 등 주(state)를 단위로 운영하는 매체는 65개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대도시(50개), 전국(27개), 초밀착지역매체(13개), 국제사회(10개) 등이었다. 동부, 중부, 남부 등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는 가장 적은 7개에 불과했다. 비영리 언론사가 없는 주는 전체 50개 주 중에서 9개였다.

운영 형태는 크게 독립형, 언론사 지원형, 비영리재단 지원형, 대학부설형 등 4개로 구분할 수 있다.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따른 분류다. 전체의 30% 정도는 설립에 필요한 종자돈을 외부에서 지원받았고 기부금 규모는 1억 원 정도로 알려진다. 주요 수익원은 공익재단의 기부금, 개인기부자, 광고, 콘텐츠 판매와 이벤트 등으로 아주 유사했다. 공익재단의 지원을 받는 매체는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61개사였고, 독립형은 50개, 대학부설은 41개, 언론사 지원사는 20개였다. 독립형의 경우 일반주제를 다루는 매체가 가장 많았고 탐사보도, 국제보도 및 정부관련 매체가 그 뒤를 따랐다. 공익재단 지원형의 경우 정부관련 및 공공정책/국제보도의 비중이 높았다. 최근 등장한 비영리 매체 중에서는 특히 대학부설 언론사가 많았는데 그 결과는 다음의 <표2>에 정리되어 있다.

 




대학부설 언론사 중에는 일반주제를 다루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곳의 비중도 15%정도였다. 대학부설 언론사들은 특히 지역밀착형 소규모 언론이 많았는데 전체 40개 중에서 9개에 달했다. 그 밖에, 대도시(10개) 및 전국(11개)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도 많았다. 조사 대상 중 지역밀착형 언론사는 13개로 전체의 10%에 못 미쳤고, 공익재단이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공익재단 지원형의 경우, 소속된 주(州) 전체를 다루는 비중이 가장 높았고(전체 61개 중 40개), 대도시(11개)와 전국(7개)도 비교적 많았다. 공익재단 중에서도 프랭클린 센터(Franklin Center for Government & Public Integrity)는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곳으로 자세한 내용은 <표3>과 같다.

 



 

전통적인 언론과 달리 협업 저널리즘이 잘 발달해 있고, 인건비를 제외한 고정경비가 아주 낮고, 유투브와 대형 언론사를 활용함으로써 유통경비를 극소화 시킨 것도 특징이다. 물론 주관식 설문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재정 기반은 여전히 취약했다. 172개 매체 중에서 절반 정도는 대부분의 경비를 특정 재단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콘텐츠 판매 등을 통한 수익은 미미한 수준이고 수익원 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아직은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신규 인력을 채용할 경우 비즈니스, 광고와 기부금 모집 인력을 우선 충당할 것이라는 비중은 54%로 가장 높았는데 안정적 수익구조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사 대상 대부분 2012년 현재 기준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 81%에 해당하는 언론사들은 향후 5년간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은 이미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망에 있어서도 낙관적인 관점이 비관적 관점을 압도했다. 향후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밝힌 곳은 40%로 축소를 밝힌 10%보다 훨씬 많았다. 미래가 어둡다고 답을 한 비중은 불과 4%에 불과했고“상당히 자신있다”와 “어느 정도 자신있다”의 비중은 각각 26%와 55%로 높았다. 그렇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비영리 저널리즘이 최근 급속하게 확산된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인적자원 및 기술적 측면에서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

 

줄리안 어산지(Julian Assange),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 브레들리 메닝(Bradley Manning). 미국 정부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살,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 및 인권 유린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다. 미국의 CNN, FOX, CBS,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내용이다.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y Complex)와 월가-재무부복합체(Wall Street- Treasury Complex)에 이어 담론복합체(Press-Think tank-Business Complex)가 형성되어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k)의 뉴스코포레이션(News Corporation)이 주도했던 대규모 해킹 게이트,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미디어셋(Mediaset)을 통한 민주주의 무력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언론장악 등도 권언유착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언론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을 때 대안언론은 필연적으로 출현했다. 1960년대 중반 미국 언론이 정부의 베트남 침공에 협력하고 있을 때 공동체 라디오와 팜플렛은 전성기를 누렸다.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나 워싱턴포스트의 ‘워트게이트’폭로 등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뒤늦은 고육책이었다.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언론사가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는 배경에는 민주주의가 일상적으로 위협을 받는 이러한 정치적 맥락이 작용했다. 뉴스 비즈니스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처음 등장했던 미국의 CNN은 1991년 제1차 걸프전 이전까지 상당히 고전했다. 냉전이 저물면서 국제뉴스에 대한 수요는 크게 줄었다. 많은 언론사에서 특파원을 철수시켰고 국제뉴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높지 않았다. 걸프전쟁은 이 상황을 하루아침에 역전시켰다. 특파원을 없앴던 많은 언론사들은 CNN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대 이후 CNN, BBC, 로이터 등이 국제뉴스 시장의 점유율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전문성이 필요한 국제뉴스에 대한 외주는 이렇게 시작했다. 1990년 등장한 블룸버그 통신 역시 이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하기 이전까지 경제뉴스에 대한 수요는 그렇게 폭발적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유수의 언론사들은 블룸버그 통신이 제공하는 경제뉴스로 지면의 상당부분을 채우기 시작했다. 역시 전문성과 비용이 문제였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제뉴스 수요를 통해 블룸버그 통신은 자연스럽게 경제뉴스의 도매상으로 부상했다. 로이터 통신이 경제뉴스 전문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이러한 틈새시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뉴스 비즈니스의 틈새는 지역밀착형뉴스, 탐사보도 및 특화형 콘텐츠에서 발견된다. 디지털 경쟁자를 맞아 전통적 언론사는 장시간의 고비용이 불가피한 탐사보도를 지속할 여력이 없다. 탐사보도 전문매체에 콘텐츠를 위탁하고 그 성과를 같이 따먹는 전략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대형할인 매장이 들어서면서 모든 상품을 한곳에서 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 소비자들이 동네 매장을 외면하는 것처럼 뉴스 소비자도 변했다. 포털과 정보수집 사이트에서 손쉽게 뉴스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개별 언론사를 번거롭게 방문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생필품이나 유통기한이 짧은 채소류를 구입할 경우 부득이 동네슈퍼를 찾는 것처럼 지역밀착형 언론사의 존재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명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처럼 스포츠, 화훼, 예술, 과학, 취미 등 특화된 콘텐츠 전문 매체의 경쟁력도 유효했다. 비영리 언론사가 탐사보도, 특화영역, 지역밀착 등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장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뉴스에 대한 문화적 규범이 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18세기 종이신문은 혁신적인 뉴미디어였다.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고, 동조세력을 모으고, 상대편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 종교적 신념과 옹호하는 가치로 분열되었던 신문은 광고와 중산층의 정보수요라는 매력적인 수익원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정치인의 추문이나 경제인의 비리, 유명인의 사생활을 다룬 삽화와 만화로 도배된 대중지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도 상당했다. 전신(telegraph)의 등장으로 사실 중심의 간략한 정보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정파적인 정보가 아닌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1896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는“뉴스다운 뉴스로 아침 식탁을 더럽히지 않는 신문”을 표방했고 광고와 구독료를 매개로 한 지금의 언론모델이 정착했다.

그러나 광고를 주요 수익원으로 하는 언론 모델의 성패는 더 많은 발행부수와 방문객의 확보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광고시장에 신규 경쟁자들이 등장하면서 독자의 주목(attention)을 끌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19세기 황색저널리즘과 유사한 현상이 등장했고 뉴스의 선택 기준은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아닌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것으로 변했다. “방문객(traffic)이 아닌 영향력(impact)”이라는 새로운 접근이 나온 배경이다. 비영리 언론사들은 방문객을 극대화 하는 전략이 아닌 독자와 공동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뉴스에 집중한다. 영향력 증대를 통해 공동체의 변화에 기여를 할 경우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자연스럽게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료로 얼마든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뉴스를 보는 대가로 성가시고 불편한 광고를 봐야 한다면 양질의 콘텐츠를 보는 대신 기부금을 달라는 요구는 너무도 합리적이라는 판단이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교육 사업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독지가들이 학교 교육보다 더욱 중요한 언론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득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국내에서 사회 지도층의 불법탈세를 고발한 <뉴스타파>의 특종 보도 이후 이 매체에 대한 후원금이 쇄도하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탐사보도를 이끌어 온 일련의 선구자들과 광범위한 언론 예비군이라는 요소도 있다.

찰스 루이스(Charles Lewis). 미국 아메리칸대에서‘탐사보도워크숍’(Investigative Reporting Workship)을 책임지고 있다. 1977년에는 공공청렴성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를 그리고 1997년에는‘탐사보도국제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ICIJ)를 발족시켰다. 공공청렴성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빌 부젠버그(Bill Buzenberg)는 미국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탐사보도 전문가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의 간판 프로그램인 “All Things Considered"와 "Talk of the Nation"을 기획했다. 그 밖에, 탐사보도센터(CIR)를 다시 부활시킨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al)은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에 참여했던 경력 40년의 기자 출신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인콰이어리,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 등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프로퍼브리카의 폴 스타이거(Paul Steiger), 텍사스 트리뷴의 에반 스미스(Evan Smith), 민포스트의 조엘 크래머(Joel Kramer)와 같은 설립자는 모두 언론계에서 존중받는 기자였고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언론계를 떠나야 했던 인물이다. 정리해고와 고용불안이 가시화 되면서 많은 언론인이 실직자로 내몰린 것도 비영리 매체의 인적 역량 강화에 큰 몫을 했다. 언론인의 무한 경쟁이 일상화 되면서 일종의 벤처 기업에 해당하는 비영리 언론사에 대한 매력이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혁명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열풍은 불지 않았다. 다음의 <그림1>에 나오는 것과 같은 멀티 플랫폼의 등장은 그 중에서도 특히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림1: 멀티 플랫폼>

 

종이신문은 여전히 텍스트 중심의 매체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자 해독력이 부족한 대중에게 있어 신문은 여전히 낯설다. 방송을 통한 뉴스 시청 역시 한계가 많다. 정해진 시간에 고정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익숙한 포맷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를 맞아 기성언론과 신규매체의 차이는 크지 않다. 최고 수준의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해도 유통 채널을 찾지 못해 사장되던 과거와 달리 콘텐츠 생산자는 더 이상 을(乙)이 아니다. 유명배우를 확보하고 있는 기획사나 경쟁력 있는 구성작가의 영향력이 공중파, 종편, 케이블방송의 PD를 능가한 것과 유사하다. 프로퍼브리카의 ‘뉴올리언스 안락사’보도가 협력사인 뉴욕타임스를 통해 1차 증폭되고, 유투브를 통해 2차 확산되고, 자연스럽게 뉴스 소외계층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윤전기는 물론 배달 인력도 필요 없다. 심지어 사무실도 없는 경우가 많다. 뉴스 비즈니스에 필요한 경비를 극소화 하는 한편,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익명의 독자를 연결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방문객을 두고 서로 경쟁하기 않아도 되기 때문에 콘텐츠를 공동으로 제작하고, 유통시키고, 프로젝트와 노하우를 쉽게 모방할 수도 있다. ICIJ를 중심으로 전 세계 언론인이 공동으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것도 디지털 혁명이 준 선물이다. 공간과 인력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학이 앞 다투어 비영리 언론사를 설립하는 것도 디지털 세대의 등장과 새로운 뉴스 소비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비영리 언론 모델의 전망과 한국적 이식 가능성

 

한국과 미국이 처한 객관적 현실은 다르다. 미국과 달리 자발적 후원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영리 언론사의 재정적 토대는 취약하다. 자발적 기부자를 늘리고 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제조건인 언론인의 전문성 역시 갈 길이 멀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몰두하는 국내 뉴스 소비자가 양질의 뉴스 콘텐츠를 외면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고비용과 많은 시간을 들여 좋은 기사를 만들어도 그 값을 지불하려는 성숙한 구성원이 없다면 비영리 언론사가 들어설 여지는 많지 않다. 저널리즘 교육을 거의 포기한 대학에서 대학부설 언론사를 만들 엄두를 낼 것 같지도 않고 이를 제대로 운영할 만큼 실력있는 전문가도 별로 없다. 디지털 혁명을 통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에서 그 열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는 관점을 받아들일 경우 희망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많이 찾을 수 있다.

일상화된 언론사의 구조 조정을 통해 많은 수의 능력 있는 전문 언론인들이 실업자로 전락했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권력으로 자리를 잡은 제도권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심각하다. 일반 국민의 저널리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는 제대로 된 고품격 뉴스를 통해 삶의 변화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동일 뉴스를 텍스트, 애니메이션, 동영상 및 인포그래픽와 같은 다양한 포맷으로 전달함으로써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부족했다. 공익재단의 기부금을 활용하는 방안이나 독지가의 지원을 받는 사례는 없지만 <한겨레신문>과 <국민TV> 출범에서 보듯 그 가능성은 열려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이 비영리 언론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지원을 하도록 하고, 복수의 비영리 단체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비용을 최소화하고, 차별적인 콘텐츠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종이신문만 우대하는 정책을 바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직접 비영리 언론사의 '종자돈'을 제공할 수도 있다. 현재 실직 상태에 있는 전문직 언론인을 대상으로 비영리 언론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우량도서 지원과 같은 방식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정부가 구매해 보급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디지털 인프라를 적극 활용할 경우 디지털 저널리즘의 혁신을 주도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잊혀진 얼굴이 아니라“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단/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언론이 되는 길은 그렇게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