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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막을 길 없었나? 알면서도 안 지키는 오보 예방법, 실천 의지가 관건

아담한남자 2014. 8. 4. 15:30

(이글은 한국언론진흥재낟 '신문과 방송'에서 가져온것 입니다)


오보 막을 길 없었나?

알면서도 안 지키는 오보 예방법, 실천 의지가 관건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오보를 막을 길은 없다. 그러나 오보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시스템과 실행 의지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오보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1) 권위주의 당국이 ‘보도지침’ 따위로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에는 취재와 보도의 행동반경이 넓지 못했고 이따금 권력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기사가 아니면 ‘오보’의 범주에 낄 수조차 없었다. ‘견통령(犬統領)’은 ‘대통령(大統領)’의 확실한 오보이기에 응징의 대상이 됐지만 인명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하면서 동원한 숱한 왜곡과 허보(虛報)는 오보로 여겨지지 않았다.


  (1) - 1975년 8월 한국기자협회는 ‘오보발생의 내외적 요인’을 주제로 일선기자들을 위한 연수회를 가졌다. ‘오보의 원인’, ‘경제기사와 오보’, ‘외신과 오보’, ‘제작상의 오보’, ‘미국의 실례’ 등 5편의 발표가 있었다. 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신문과 방송>은 1989년 7월호 특집 기사로 ‘오보와 정정’을 게재 했다. 특집의 일부로 ‘가네트센터 1986년 보고서’가 요약 소개됐다. ‘오보의 정정은 신뢰도를 높여준다’를 모토로 한 이 자료는 오보를 ‘객관적 오보’(시간/날짜, 주소/장소, 착오/직위, 숫자/통계, 표현, 설명, 기타 철자문법 등)와 ‘주관적 오보’(누락, 과장, 축소, 인용상 실수, 기타)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은 이후 한국의 오보관련 연구에 수용되어 여러 연구에 활용됐다.





경쟁 늘면서 오보도 늘어

  그러다가 1980년대 말부터 오보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몇 가지 맥락이 있다. 첫째, ‘속보’ 경쟁이 심화됐다. 1987년 언론자율화 조치 이후 언론 매체간의 기사·광고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사의 정확성보다 신속성의 가치가 숭배됐다. ‘아니면 말고’식 무책임한 기사들과 ‘아니어도 괜찮으니’ 같은 자극적·선정적인 기사들이 넘쳐나게 됐다. 


  둘째, 기사의 질을 가려보는 시민들의 눈높이가 달라졌다. ‘오보’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은 더 이상 언론의 횡포를 속수무책 묵묵히 감내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피해의 구제를 언론중재위와 법원에 신청하는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 시민들은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감시견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기는 커녕, 권력자의 대문을 지켜주는 충견이 되거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 오히려 연약한 시민을 공격하는 맹견으로 전락한 언론의 오보를 예전처럼 더 이상 눈감아 줄 이유가 없었다.


  셋째,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보도 과정에서 한국 언론이 보여준 노골적인 정치적 편파성은 언론 보도가 불편부당하거나 공정·정확·객관적이라는 시민들의 믿음을 앗아갔다. 군부재자 투표의 부정을 폭로하는 사건이나 악의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철면피한 모의가 언론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은폐·축소·확대·과장·왜곡되는지목도하게 됐다.


  넷째, 언론도 더 이상 시민들의 불신이나 삿대질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낯을 드러냈다. 직업적 윤리 준칙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도 구성원들 서로가 민망해하지 않았다. 1957년 제정한 언론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40년만인 1996년 전면 개정하며 윤리적 실천 의지를 다졌지만 별 효력을 보지 못했다. 


  다섯째, 언론은 서해훼리호·성수대교·삼풍백화점과 같은 사고, 지존파·막가파 같은 사건들을 취재하면서 숱한 오보와 선정·자극적인 장면을 잇따라 연출했다. 민영방송이 추가되고 케이블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추가되면서 언론은 질적 경쟁보다 결과적으로 ‘오보 경쟁’과 ‘인권 침해’ 보도를 양산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 언론소송이 본격화 됐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언론의 오보 현상을 비판하는 글과 연구보고서들이 줄을 이었다.(2) 1990년대 초중반에 발표된 자료들에 의하면 ‘오보’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오보란 ‘허보·오보·왜곡·과장·날조·불공정·편파보도 등’을 지칭하는 용어다. 단지 틀린 사실을 다룬 부정확한 보도뿐만 아니라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상실한 편파 보도가 오보로 간주됐다. 


  둘째, 오보 발생의 원인으로 기자 개인의 문제, 언론사의 취재편집 관행, 언론과 취재원 관계, 언론사의 정치적 지향과 같은 점들이 지적됐다.


  셋째, 오보의 대응책으로 기자 개인의 주의 환기, 전문성 제고, 사실 확인 노력, 신중한 편집, 옴부즈맨의 활용, 정보의 해석과 기사 과정에서 객관성을 높이려는 노력, 정보원의 객관적 정보 제공, 정정보도 요구의 수용, 피해자의 법적 대응과 같은 방법들이제시됐다.


(2) - 이 무렵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오보와 정정>(1990년), <언론오보 사례연구: 정부시책 보도를 중심으로>(1992년)를 펴냈다. 노광선은 <무엇이 오보를 만드는가>(1995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김창룡은 <보도의 진실, 진실의 오보>(1994년, 나남출판)을 저술했다. 한정호는 <기사 오보의 구조 그 개선방안>(1997년, 삼성언론재단), 공보처는 <정책홍보와 오보 대응>(1997)을 발행했다. 또 임병국의 ‘한국 일간신문의 오보와 그 구제에 관한 연구’(1990, <커뮤니케이션연구>, 제7권), 김지운의 ‘뉴스원의 ‘언론플레이’를 탓하는 오보’(1991, <저널리즘비평>, 2권 1호), 박기순의 ‘오보와 언론의 책임’(1993, <저널리즘비평>, 11권), 우병동의 ‘뉴스 보도의 정확성연구: 오보 발생의 구조를 중심으로’(1996, <언론과 사회>, 11호)를 참고할 수 있다.



‘한국 언론학 1세대’의 책임

  2014년 초여름, 한국 언론의 오보에 대한 고민은 사반세기 전의 그것으로부터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어떤 것들이 오보이고 그러한 오보를 줄이기 위한 방법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각 언론사의 취재보도 가이드라인과 언론인 조직의 윤리장전에 오보를 해소하려는 구체적인 장치들이 요모조모 제시돼 있다. 결국 취재 준칙과 윤리적 실천 다짐대로 실행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한국 언론이 오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 언론학 1세대’의 각별한 실행 의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한국 언론학 1세대’란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신문방송학과 등에 입학해 한국어로 ‘언론의 사명과 역할’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이 시기에 언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석·박사 과정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사람들도 ‘한국 언론학 1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 또 이무렵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나중에 특수대학원 등에서 ‘언론학’의 세례를 받은 현업 종사자들도 한국의 언론학 1세대에 포함될 것이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일부는 현업 언론인이 되어서 언론사의 사장·본부장·국장·부장이나 논설위원 등 한국 언론사 경영·편집의 중핵이 됐다.


  그러한 1세대 현업 언론인에 의해 후배 언론인들이 생산돼 취재 현장의 일선을 감당하고 있다. 일부는 대학의 교수가 되어 길게는 30여년 짧게는 10여년 이상 한국 언론학을 이끌면서 제자들을 양성해 왔다. 제자들의 일부는 언론인과 언론학자로 재생산됐다. 현업에 종사하던 언론학 1세대의 일부 언론인은 학업을 계속해 대학의 언론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일부는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견에서 정부기관의 홍보견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언론관련 큰 학회의 장을 지낸 분들을 비롯, 여러 명의 언론학자들이 언론사의 임원이 되거나 언론기구의 수장이 되어 언론정책을 실행하는 일을 떠맡아 왔다. 이런 연유로 2014년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한국 언론의 ‘오보 참사’는 ‘한국 언론학 1세대’의 엄혹한 자기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팽목항에 특파된 어리고 젊은 기자들이 생산해 낸 여러 가지 오보는 기실 그들을 재생산해 저널리즘 현장에 투입한 한국언론학 1세대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것이다. 


언론학 1세대는 오보의 폐해를 이미 배웠을 뿐만 아니라 예방책을 실행할 현실적 힘도 갖고 있으나 이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까닭이다. 다시, 한국 언론학 1세대가 스승들로부터 배우고 익힌, 오보를 줄이는 방법을 회상하고 열거해 보자. 


언론은 시민의 알 권리 대행자

  첫째, 출입처의 발표 정보를 충실하게 받아쓰는 ‘발표 저널리즘’의 관행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언론은 출입처가 홍보하려는 정보를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믿음직스럽고 충직하게 포장이사 해주는 짐꾼이어서는 안 된다. 1986년 한국 언론의 이른바 ‘김일성 사망’ 오보 당시, 일본의 일부 신문과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는 정부기관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신중하게 재검토함으로써 오보를 피했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정부기관이 제공한 ‘전원구조’라는 헛된 정보나 ‘사상최대 수색작업’이라는 의도적인 왜곡 정보를 ‘진실’인 것처럼 받아쓰고 전달하는 잘못을 범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정부발표라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뉴스 전달 책임은 언론의 몫이다.


  둘째, 언론학 1세대가 배운 대로 언론과 취재원은 ‘불가근 불가원’을 확실하게 유지해야 한다. 정보를 얻기 위해 취재원이나 출입처와 가까이 접촉할 수밖에 없지만 취재와 보도는 철저하게 시민의 알권리 대행자로서 언론다워야 한다. 국민의 생명이나 국가 안보와 직결되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 너무자주 오프더레코드나 엠바고를 남발해 정보의 은폐나 정보 전달의 지연이 발생해선 안 된다. 제때에 전달하지 않은 뉴스를 제대로 된 보도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익명의 취재원을 줄이는 한편 따옴표 저널리즘의 편집 관행도 근절해야 한다. 다각적인 취재원 취재를 통해 사건의 실체와 진실에 접근하기보다 입맛에 맞는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장한 뒤, 그의 발언 일부를 따옴표 제목으로 처리하면서 ‘사실적·객관적’ 기사 운운하는 게으르고 비겁한 저널리즘 행태를 벗어나야 한다. 외국의 신뢰받는 언론들은 뉴스의 취재원 숫자는 많고 익명의 취재원은 적을 뿐만 아니라 취재원의 발언 중에서 따옴표로 제목을 뽑아 처리하는 경우도 드물다. 따옴표 저널리즘은 그렇게 발언한 사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러한 발언 사실은 진실과 동일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옴표 제목은 본질을 호도하고 핵심을 물타기하는 전형적인 기제로 애용돼 왔다. 정작 따옴표 처리가 필요한 정보에는 의도적으로 따옴표를 생략하여 취재원의 ‘주장’을 ‘확정된 사실’로 둔갑시키는 일도 철저히 금해야 한다.


  넷째, 견제 시스템의 작동을 강화하는 일이다. 공정보도협의회나 공정방송협의회와 같은 내부감시 보도 시스템의 활동을 강화하고 옴부즈맨·고충 처리인의 실질적인 활동을 보장해 기사의 정확성,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지금 각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옴부즈맨이 누군지, 고충처리는 누가 담당하고 있는지 질문하면 곧바로 연결해 줄 수 있는가? 최근 일부 언론이 도입하고 있는 외부의 시민편집인 시스템의 가동도 언론의 오보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나아가 언론사 간의 상호 비판과 견제 역시 전반적으로 언론 시장의 전체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해마다 여러 기관에서 언론인들에게 특종상·기자상을 수여하듯이, 언론계와 학계의 ‘한국 언론학 1세대’들이 주기적으로 ‘오보 사례’를 심층 점검하고 예방책을 강구하는 것도 오보를 줄이는 방법일것이다.


배운 대로 실천하라

오보에 대한 언론사, 언론계 내부의 처절한 자성 없이 오보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아사히신문 등도 오보를 하지만, 그들이 더욱 빛나는 것은 오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성찰, 확실한 책임 추궁을 통해 수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저널리즘 현장의 경영진·간부가 된 한국 언론학 1세대는 스스로 오보에 대해 사과하고 시정할 수 있는 결정권을 지금 가지고 있다. 배운 대로 실행할 의지만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