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따라잡기/기타

뉴스산업의 위기 해법 저널리즘 복원에서 찾아야

아담한남자 2014. 5. 12. 07:00

(이글은 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에서 가져온것 입니다)


뉴스 콘텐츠의 나아갈 길


뉴스산업의 위기 해법

저널리즘 복원에서 찾아야



박진우/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뉴스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논의들은 그동안 무수히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방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20세기 이후 우리에게 익숙하던 저널리즘 환경의 붕괴를 예고하는 징조들은 이미 가시적이다. 전통적인 뉴스 산업이 자신의 경제적 토대로 삼았던 수익 모델은 작동 불능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경제적 위기는 많은 경우 뉴스 콘텐츠와 저널리즘의 퀄리티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상업적 동기에서 유래

한 여러 가지 ‘일탈적’ 보도가 만연한 것은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신 디지털 시대 특유의 시민참여 저널리즘 모델은 그 사이에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이것은 전통적 뉴스미디어의 존립 기반은 물론, 이들의 폐쇄적인 전문직 저널리즘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저널리즘 현장과 학계가 함께 고민했던 것은 이 같은 임박한 파국에 대처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일이었다.


‘책무를 다하는 저널리즘’이 근원적인 처방

뉴스 콘텐츠의 품질에 대한 고민, 전문직 저널리즘의 새로운 가능성, 나아가 ‘저널리즘의 복원’이라는 과제가 결국 쟁점이었다. 그리고 해답은 역시 저널리즘 본연의 영역인 ‘뉴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경제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은 결국 저널리즘 고유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부응을 통해 찾아야 하며, 또 찾을 수 있다는 잠정적인 합의이다. 그러한 인식에 도달하기까지, 국내외의 뉴스미디어가 겪었던 시행착오는 결코 간단치 않았다. 21세기의 첫 10년은 디지털・컨버전스・모바일의 시대로도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뉴스를 포함하여)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의 패턴을 재조정하는 거시적인 변동 국면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술적 진화가 뉴스미디어의 성장에 반드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지는 않았다. 뉴스 영역에서 온라인의 형태로 새로운 뉴스 공급자들이 급증하였고, 이들과 기존 미디어의 경쟁은 날로 격화되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뉴스미디어의 존립 기반이던 두 개의 축 모두에서 위기 신호가 켜졌다는 점이다. 유료 독자의 감소, 그리고 광고 시장의 축소 추세가 뚜렷하였다. 뉴스 산업에서 경쟁은 물론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경쟁은 그야말로 경쟁의 양과 질 모두에서 획기적으로 변화한 것이었고, 나아가 경쟁의 장의문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뉴스미디어들은 미래 경쟁력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보다는, 단지 임시적이거나 방어적인 성격의 점진적 대응을 해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디지털・온라인뉴스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 뉴스룸의 조직 방식, 저널리스트 개인의 업무 영역 재조정, 직업 역량

의 강화 등을 둘러싼 논의들은 그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저널리즘의 복원(Reconstruction of Journalism)’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는 바로 이 같은 변화의 맥락 속에서 제출되었다. 워싱턴포스트의 전직 편집국장이던레오나드 다우니(Leonard Downie, Jr.)와 언론학자 마이클 셧슨(Michael Schudson)은 2009년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스쿨에 제출한 보고서1에서 뉴스 산업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저널리즘이 고유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근원적인 처방을 제안했다. 여기서 ‘저널리즘의 복원’이란 결국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활기차고 독립적이며 ‘책무를 다하는 저널리즘(accountability journalism)’을 구현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언론사들의 혁신에 요구되는 몇 가지 사회적의제를 제기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지속 가능한 뉴스 비즈니스 모델의 확립, 디지털 저널리즘의 사회적 책무성,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인 투자(공적인 지원)의 필요성이 보고서에서 다루어진다. 이들은 불확실한 경제적 환경 속에서 언론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은 언론사가 형편이 어렵다고 ‘딴짓’에 몰두하면 그것 때문에 더 큰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저널리즘의 ‘지속 가능성(durability)’을 토대로 스마트 미디어 등의 플랫폼 변화에 접근하는 태도일 것이다.2


뉴스 선별 능력 갖춘 전문직 기자로 거듭나야

이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도대체 뉴스는 현재의 산업적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아가야 하는가? 지난 십수 년 동안 뉴스 그 자체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디지털・컨버전스의 흐름 속에서 과연 뉴스에 요구되는 새로운 사회적 책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또 뉴스가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 걸쳐 어떤 혁신을 수반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결코 짧게 요약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지난 십수 년간의 시행착오 속에서 관련자의 상당수가 동의하는 어떤 방향성을 도출하는 일은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우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들을 평가함에 있어, 뉴스의 새로운 사회적 책무라는 지점에 대한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온라인 저널리즘과 시민 저널리즘(civic journalism), 공공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의 다양한 실험들 속에서 최근 탐사 저널리즘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프로퍼블리카’나 ‘허핑턴포스트’는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여부 못지않게, 그것이 가지는 저널리즘 본래의 가치 구현의 차원에서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이들 매체들은 궁극적으로 과거의 저널리즘 규범, 혹은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오랜 습관이 낳은 병폐들에 대한 도전의 방식으로서 신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탐사 저널리즘은 기존 저널리즘이 가지는 여러 가지 형식적인 제약에서 벗어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자체가 진실에 대한 추구라는 저널리즘의 근본 원칙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정신을 구현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뉴스 콘텐츠의 내적인 혁신은 여전히 우선적인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구태의연한 뉴스 관행 극복 위한 노력은 기본

 다음으로, 한국에서 특히 그러했지만 온라인 저널리즘, 시민참여 저널리즘은 전문직으로서의 저널리스트의 존립 기반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경험 속에서 이제는 이들이 전문직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혹은 의구심은 서서히 극복되고 있다. 기자들만이 선별해 내고 또 전달할 수 있는 뉴스 가치, 그리고 그 취재 과정에서 이들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시민참여 저널리즘이 전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많지 않다. 그것은 곧 시민참여 저널리즘이 구현하는 디지털 시대의 개방성 및 참여 가능성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을 새삼스레 재확인한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 이제는 시민 저널리즘과 전문직 저널리즘의 공존이 불가피하며, 양자가 서로 나누어 맡아야 할 책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전문직 저널리즘은 이제 보다 혁신적인 저널리즘 모델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모바일 뉴스 그리고 뉴스 유료화의 시대는 개인 차원의 파편화된 뉴스 소비에 맞는 파편화된 뉴스 서비스가 등장하는 시대이다. ‘나우 디스 뉴스(Now This News)’처럼 아예 짧은 동영상 뉴스만을 제공하는 ‘소셜모바일 뉴스’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직 저널리스트가 지향할 수 있는 전문성의 영역도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소위 ‘뉴스 큐레이션’, 즉 뉴스가 과잉 공급되는 시대에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나에게 더 필요한 뉴스인지를 선별하고 이를 ‘챙겨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기자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서비스 영역은 물론 비즈니스의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검색 기계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기자가 스스로 이러한 뉴스 공급의 네트워크의 결절점에 서지 않는 한 결코 효과적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모델이기 때문이다. 전문직 저널리스트가 점유해야 할 새로운 위상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고민의 과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또한 뉴스의 내용과 형식 면에서의 질적인 향상이라는 과제는 이 모든 상황에서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쟁점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상황은 가장 먼저 뉴스 콘텐츠의 형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뉴욕타임스의 멀티미디어 콘텐츠인 ‘스노우폴(Snowfall)’이나 가디언의 ‘파이어스톰(Firestorm)’은 국내 기자들에게도 미래 뉴스 콘텐츠의 새로운 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판 스노우폴’ 기사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향신문의 ‘그놈 손가락 : 2012년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여러 취재부서의 협업을 통한 멀티미디어 구현의 의미 있는 시도였으며, 시사IN의 ‘응답하라 7452’는 크라우드소싱 형태로 독자 참여를 유도한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들은 그 자체로 혁신적이다. 즉 새로운 것을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새롭게 상상한 결과물들이다. 이것은 온라인에서 더 빠른 속도로 모바일로 옮겨가는 뉴스 수용자들의 패턴에 맞추어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을 부여한 뉴스 콘텐츠의 형식들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독자들을 내쫓다시피한 구태의연한 뉴스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저널리즘이 자신의 존재 이유 새롭게 증명해야

이상의 논의들만으로 뉴스 콘텐츠의 미래, 그리고 저널리즘의 복원과 뉴스의 공공성이라는 이슈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저널리즘의 신뢰 추락과 경제적 위기는 결국 온라인 시장의 확대에 대한 잘못된 대응, 그 결과 더욱 상업적이고 단편적이며 퀄리티가 낮은 정보의 양적 확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뉴스 생산 현실의 문제점이 표면화된 것이다. 그 문제를 정면으로 극복하기 위한 시도 역시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처방을 요구한다. 앞서 거론된 수많은 실험의 사례들은 여전히 부분적인 실험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실험들만으로도 뉴스미디어가 변화하는 환경 속의 변화하는 독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이제 새롭게 고민할 과제는 저널리즘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증명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뉴스 그 자체를 질적으로 의미 있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공적인 삶의 형태와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함께 대화하는 상담자 혹은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일이다. 저널리즘의 복원이란 이 같은 사회적 책무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구현하는 방안을 찾기 위한과정일 것이다. 더불어 이를 위한 공적 지원이나 사회적 투자의 요구를 널리 확산시키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