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 소통(騷通), 소통(劭通)
(이글은 경남신문에서 가져온것 입니다)
소통(疏通), 소통(騷通), 소통(劭通)
미국 대통령 중 ‘위대한 소통자(the Great Communicator)’란 칭호를 받는 이가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정치적 경륜이 많거나 박식 또는 달변가여서가 아니라, 언제나 당당함과 원칙을 지킨 것이 비결이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 매년 10~15회 정도 기자회견을 한다. 또 간단한 기자간담회도 30회서 150회나 된다. 기자회견은 유일한 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방식은 아니지만, 소통정치의 주요한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위대한 소통자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인물이 있었다. 조선의 개혁군주로 평가받고 있는 정조이다. 그는 “소통의 정치를 어찌 폐할 수 있겠는가.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오히려 냇물을 막는 것보다 심하다(疏通之政 何可廢也 防民之口 尙云甚於防川)”고 했다. 정조는 유명무실했던 상언(上言, 백성이 왕을 직접 만나 억울한 일을 호소함)과 격쟁(擊錚, 왕의 행차 중에 징을 치고 나와 왕에게 억울한 일을 호소함)을 전면 허용했다. 또 여느 왕과는 달리 궁궐 밖으로 자주 행차해 백성들을 직접 만나 하소연을 들었다. 재위기간 25년 동안 3358건의 상언과 격쟁을 처리했으며, 내용과 처리결과를 자세하게 기록해 신하들이 자칫 소홀히 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지난 6일 ‘불통(不通)’이란 비판을 받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취임한 지 무려 316일 만에 처음 열리다 보니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평가는 극명하게 차이 나고 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여권은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철학을 국민에게 보고하고 공유한 소통의 장이 됐다”고 후한 평가를 했다. 반면 야권은 “일방적인 국정홍보만 했을 뿐, 소통의 의지가 전혀 없음을 선언했다”고 혹평했다.
섣부른 판단을 해선 안 되겠지만, 박 대통령이 통합과 소통보다는 원칙과 돌파에 여전히 방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단순한 기계적 만남이라든지, 국민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고 강조한 부분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 반대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 다양하게 소통해 왔다. …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는 했으나, 박 대통령 실천의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은 그리 높을 것 같지 않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소통 위기론’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파, 계층, 세대, 지역 간 갈등이 모두 소통의 문제로 치환되면서 소통은 모든 문제에 대입해도 설명력을 갖는 거대담론이 됐다. 그럼에도 소통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로 남아 있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대중과 소통하는 거리의 철학자’란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강신주 씨는 지난주 한 매체를 통해 소통(疏通)에 대한 명쾌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는 “소통은 타인과 나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을 제거해 연결하는 것이다. 이때 타인과의 연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고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자신에게 있는 장애물을 없애려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소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노력에는 반드시 사랑이 전제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나의 욕망’인데, 욕망을 비워내지 않고는 결코 사랑도, 소통도 불가능하다고 깨우쳐준다.
여기서 우리는 나 자신을 기꺼이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고는 결코 소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배운다. 진정성 없이 형식만 빌린다면 소란(騷亂)스러운 ‘소통(騷通)’만 될 뿐이고, 심지어 폭력으로 변질되고 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소통이란 나와 타인 사이의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힘쓰는(?) ‘소통(劭通)’이어야 한다.
정오복 문화체육부장
출처-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97342